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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엘리베이터 속 작은 깨달음

by 엄라이터 2025. 5. 22.

엘리베이터 속 작은 깨달음

 

서울의 한 아파트. 바쁜 아침, 아이 엄마 미정 씨는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네 살배기 딸 유나를 안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이를 안은 채 가방까지 들고 있어 꽤 힘든 아침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한 여성이 작고 귀여운 반려견을 안고 급하게 올라탔다.
“어우, 감사합니다!”
견주인 이 여성은 숨을 헐떡이며 인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품에 안긴 강아지가 유나를 향해 “멍! 멍멍!” 짖기 시작했다.
유나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미정 씨는 당황해서 견주를 향해 말했다.

“강아지 입마개는 왜 안 하셨어요? 아이가 무서워하잖아요!”

견주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입마개가 필요한 크기도 아니고, 물지도 않아요. 그냥 짖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안은 금세 냉랭해졌다.
유나는 엄마 품에서 여전히 울고 있었고, 견주는 강아지를 달래며 눈치를 줬다.
이대로 몇 층을 더 가야 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잠깐 멈췄다. 고장이 아니었다.
바로 10층에서 늘 이 아파트를 돌며 신문을 나눠주는 노인이 타셨다.

 


그는 작고 말없이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강아지가 놀랐구먼. 아이도 놀라고.”

두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노인에게 향했다.
노인은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유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우리 유나는 무서웠겠네. 그런데 이 강아지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 놀라 짖는 걸 수도 있지.
동물도 말을 못 해도 감정은 있는 법이거든.”

노인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불안하면 말이 거칠어지고, 두려우면 표정이 굳고.
강아지도 그런 거야. 누구나 무서울 때가 있고, 누구나 이해받고 싶을 때가 있지.”

엘리베이터 안에 조용한 바람이 불었다.
잠시 뒤, 견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아이가 놀랐을 줄 몰랐어요. 입마개 생각했어야 했는데, 제 잘못이에요.”

그러자 미정 씨도 고개를 숙였다.
“저도 예민하게 반응했네요. 사실 개를 무서워하는 것도 있지만, 저도 오늘 좀 힘든 아침이었어요…”

유나는 울음을 그치고 견주가 안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얘 이름 뭐예요?”

견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몽이야. 겁이 많아서 잘 짖는데, 사실은 착한 아이야.”

유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괜찮아. 나도 겁 많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셋은 함께 웃으며 걸어 나왔다.
노인은 신문 한 장을 미정 씨에게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몽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짖는다고 다 나쁜 건 아니고, 말이 없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죠.”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 갈등이 생기기도 쉬운 그 안에서
오늘 아침, 미정 씨는 마음을 조금 더 열게 되었고,
견주도 작은 강아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은 갈등이 작은 이해로 바뀔 때,
이웃은 더 이상 남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걸 아이가 가장 먼저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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