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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29

지수의 두 번째 봄 〈지수의 두 번째 봄〉 “그래도 엄마 말씀인데 좀 참고 들어주지, 왜 그렇게 말끝마다 받아쳐?”도현의 말에 지수는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예비시어머니는 예단부터 예복, 신혼집 인테리어까지 시시콜콜 간섭했고,예비시누이는 “요즘 신부들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몰라”라며 대놓고 면박을 줬다.지수는 꾹 참았고, 도현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돌아온 말은 늘 같았다.“우리 집은 원래 그래. 그냥 적당히 넘어가. 네가 좀 이해해 주면 안 돼?”그 말이 지수를 가장 서운하게 만들었다.그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내가 알아서 이야기해 볼게"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결혼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도현의 어머니는 지수의 친정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예단 보내신 거, 저희.. 2025. 6. 6.
짧은 에세이 - 버스 안의 노약자석 버스 안의 노약자석 서울의 한 시내버스 안. 평일 오후라 승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노약자석은 예외였다.다섯 개의 노약자석은 이미 가득 차 있었고, 그중 한 자리에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단정한 티셔츠와 검정 슬랙스 차림, 겉보기엔 임산부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작은 핑크빛 배지가 달린 가방이 걸려 있었다.몇 정거장이 지나,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탑승했다.허리가 살짝 굽은 할아버지는 버스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 노약자석을 향해 시선을 멈췄다.그러더니 젊은 여성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가씨, 여긴 노약자석인데 젊은 사람이 앉아 있는 건 아니지 않소?"여성은 당황한 듯 손에 들고 있던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 2025. 6. 2.
짧은 에세이 - 길 잃은 나에게 길 잃은 나에게 요즘 들어 문득, 내 나이가 참 어중간하다는 생각이 든다.젊다고 하기엔 무리지만, 늙었다고 하기에도 어색한 나이.한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른이라는 옷’이 나에게 맞지 않는 듯 불편하다.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회사는 버티고, 집에서는 침묵하고, 친구는 점점 줄어간다.열정은 식었고, 책임만 늘었다.무언가를 이룬 것 같기도 하고,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얼마 전, 우연히 들른 동네 공원 벤치에서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 앉게 되었다.고요한 오후, 우리는 잠시 침묵을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잖아.남은 하루라도 제대로 살아볼 수 있는 지금이 있어서 말이야.” 그 말이 가슴 한켠을 톡 치고 .. 2025. 5. 29.
딸과 아빠 사춘기 딸과 아빠 사이, 대화는 늘 쉽지 않았습니다.서로를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법이 서툰 두 사람.그날 밤, 딸의 눈물과 아빠의 진심이 만나다시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당신도 오늘, 누군가의 마음을 다정히 두드려보세요. 《딸과 아빠》중학교 3학년.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옷을 고르고, 밤마다 책상 앞에서 고민하는 시기다.요즘 딸은 사춘기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오락가락한다.내가 보기엔 그냥 예민한데, 딸의 입장은 다르다.그날도 그랬다."요즘 너무 늦게 자는 것 같아. 핸드폰은 좀 줄여야 하지 않겠니?"말은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딸의 반응은 날카로웠다."아, 아빠 진짜 왜 맨날 그런 말만 해! 나도 알아서 해!"말끝에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간 딸을 보며, 나는 한참 동안 문만 바라봤다.문 .. 2025. 5. 26.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 잠깐 멈춰 선 자리에서 "잠깐 멈춰 선 자리에서" 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을 탄다.회색빛 벽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세상과의 연결을 끊은 채 서 있다.‘출근’이라는 공통의 임무 속에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서로의 존재는 벽이 되고, 숨소리조차 소음이 되는 공간.그게 아침 지하철이다.그날도 비슷했다.힘겹게 몸을 구겨 넣듯 열차에 올랐고, 손잡이를 붙잡은 채 눈을 감았다.문득 내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허리를 움켜잡고 힘겹게 일어섰다.그는 내 옆에 선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했다.“학생, 여기에 앉아요. 무거운 가방 메고 서 있으니 마음이 안 좋네.”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그러자 노인은 한 발짝 더 다가.. 2025. 5. 26.
수빈이의 식당 예절 수업 “수빈이의 식당 예절 수업”아이들 웃음소리, 어른들 이야기 나누는 소리,음식 냄새가 뒤섞인 따뜻한 혼잡 속. 주말 저녁의 한 유명 맛집.고3 수빈은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나왔다.오랜 시험 기간 끝에 찾아온 짧은 평화.아버지는 삼겹살을 익히고, 어머니는 동생을 챙기느라 분주했다.수빈은 그저 이 평화로운 순간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었다.그런데,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아이의 소란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저리 가!”“안 해! 싫어!”5~6세쯤 되는 남자아이는 식당 안을 뛰어다니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헤집고 다녔다.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다른 손님의 의자를 툭툭 치고,어느 순간엔 남의 테이블의 음식까지 손을 대었다.그러나 아이 엄마는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오히려 아이의 부모는 스마트폰만 내려다보.. 202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