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의 온기』
편의점 주인 상훈은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진열대를 정리하고 커피 머신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는 요즘 어느 한 손님 덕분에 매일 아침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손님의 이름은 진호. 스물일곱 청년으로, 늘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빈병들을 들고 와 소주 한 병으로 바꾸어 가곤 했다.
계산을 마친 후엔 길가에 놓인 간이 벤치에 앉아, 고요하게 그 한 병을 홀짝였다.
상훈은 처음엔 그저 알코올에 의지하는 백수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호의 눈빛엔 무너지지 않으려는 고집 같은 게 서려 있었다.
어느 날, 비가 쏟아지던 오후였다.
진호는 평소처럼 젖은 채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그날따라 빈병이 네 개뿐이었다.
상훈은 계산대 앞에서 주춤거리던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내가 나머지 더 채워줄게. 소주는 그냥 가져가.”
진호는 말없이 상훈을 바라보다,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술뚜껑을 열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있었다.
며칠 후, 진호는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건 자필 이력서였다.
“편의점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라는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상훈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 눈빛 속에 담긴 결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야간 알바 자리는 비어 있어.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일하는 날엔 술, 마시지 말자.”
진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진호는 새벽 1시부터 아침까지 편의점을 지켰다.
진열대 정리부터 유통기한 확인, 정산까지 빠짐없이 해냈다.
초반엔 손님들이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지만, 진호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갔다.
상훈은 그런 진호를 속으로 점점 존경하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상훈은 문득 진호에게 물었다.
“왜 빈병으로 소주를 마셨던 거야? 그냥… 궁금해서.”
진호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술이 아니면 잠들 수 없었거든요. 하루가 너무 길었어요.
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근데 매일 그 편의점 문 열리는 소리가… 뭔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어요.”
그날 이후 진호는 술을 끊었다. 그리고 3개월 후, 편의점 일을 그만두며 작은 편지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시 시작합니다. 취업이 되었어요. 이제는 누군가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상훈은 한참 그 편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소주 한 병, 그것은 그저 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온기’였음을,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드는지를 그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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