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과 기와집 골목』
한적한 기와집 골목에 새로 이사 온 리암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중학생이었다.
낯선 한국말을 어색한 억양으로 더듬으며,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골목길을 걸어 다녔다.
골목 아이들은 리암을 보고 속삭였다.
“저 아이, 영어만 할 텐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얼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우리랑 다를 거야.”
진주는 그런 시선이 불편했다. 하지만 자신도 먼저 말을 건네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아이들이 모여 골목 뒷마당에 오래된 대형 고무통을 굴렸다. 리암이 지나가다가 걸려 넘어지자, 아이들 몇몇은 킬킬 웃으며 지나갔다.
“Watch out!”
리암은 수줍게 영어로만 외쳤고, 아이들은 더 이상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진주는 잠자리에 누워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먼저 다가갔으면 리암이 혼자 서 있었을까?” 조용히 되뇌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진주는 리암에게 작은 메모를 건넸다.
“우리 반 식당에 맛있는 김밥이 있어. 같이 먹을래?” 영어로 적힌 메모 끝에는 리암이 좋아할 법한 초콜릿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리암은 눈을 반짝이며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날 점심, 둘은 김밥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암은 미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던 추억을, 진주는 이 골목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학교에서 ‘세계문화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반 친구들은 각자의 나라 음식과 노래를 준비하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들떴다.
그러나 리암은 머뭇거렸다. “우리 집 버터와 땅콩버터를 가져와도 될까?”
“버터만?” 친구들은 코웃음을 쳤다. “버터로 뭘 해?”
진주는 생각했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해.’
초콜릿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제안하며, 리암과 함께 레시피를 만들었다.
비록 낯선 조합이지만, 고소한 땅콩버터와 달콤한 초콜릿은 누구나 좋아할 맛이었다.
축제 당일, 교실 앞 테이블에는 진주가 만든 ‘리암의 땅콩초코 샌드위치’가 놓였고,
“미국 전통 스낵, PB&J 샌드위치”라고 작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처음엔 호기심 가득했던 친구들이 한 입 베어 물더니,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우리 집에도 자주 만들어 먹어야겠다.”
그 순간, 기와집 이웃 할머니의 목소리가 잔잔히 섞여 들려왔다.
“낯선 것, 어렵다고 손사래 치지 말거라. 한 번 맛보고, 한 번 듣고, 한 번 눈을 맞추면 세상은 더 따뜻해진단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리암도 진심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날 이후, 골목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영어가 서툴러도, 다른 피부색을 가졌어도,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로 나누면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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