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이와 마당이의 거리》
5층에 사는 수진 씨에게 몽실이는 세상의 전부였다.
작은 말티즈 한 마리.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낑낑거리며 뛰어와 품에 안기는 몽실이 덕분에 외로운 하루도 웃음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 수진 씨는 마음이 무거웠다.
아파트 단톡방에 이런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아이가 잠을 못 잡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또 개를 풀어놓은 건 누구죠?”
“이건 애완이 아니라 폐환입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뒤, 누군가 현관문 밑으로 종이 한 장을 밀어 넣었다.
“강아지 짖는 소리 자제 부탁드립니다. 참다 참다 씁니다.”
그날 밤, 수진 씨는 잠든 몽실이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얘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편, 1층 마당 쪽에 사는 김동주 할아버지 역시 요즘 속이 편치 않았다.
마당이는 동주의 가족이자 말동무였다.
늙은 진돗개 한 마리. 늙어서 잘 걷지도 못하는 마당이는 가끔 풀밭에 누워 해를 쬐는 게 낙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웃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애가 짖는 것도 아니고, 목줄도 매고 있는데…”
심지어 어제는 관리소에서 산책 자제를 요청받았다.
“요즘 반려동물 관련 민원이 많아서요.”
그날 저녁, 동주는 중얼거렸다.
“사람 마음보다 규칙이 앞서는 세상이 됐군…”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수진 씨와 동주 할아버지가 마주쳤다.
몽실이는 팔에 안겨 있었고, 동주의 발 옆에는 마당이가 천천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몽실이는 살짝 낑낑거렸고, 마당이는 눈을 감았다.
묘한 침묵.
그러다 수진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아지, 이름이 마당이에요?”
“응, 마당에서 주워와서.”
“얌전하네요. 저희 애는 아직 어려서 짖을 때가 많아요.”
“나이 들면 다 조용해져. 사람도 그렇고, 개도 그렇지.”
그 짧은 대화가 시작이었다.
며칠 뒤, 수진 씨는 용기 내어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504호 박수진입니다.
저희 몽실이가 요즘 짖는 소리로 불편 끼쳐 죄송합니다.
훈련받고 있고, 산책 시간도 조정 중입니다.
대신 한 가지 제안드려요.
아이들과 반려견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조용한 산책 캠페인’ 어떠세요?”
놀랍게도 반응이 왔다.
- “좋은 생각이네요.”
- “아이들 정서에도 좋을 듯해요.”
- “그럼 1층 마당에서 모일까요?”
그 주말, 마당이와 몽실이를 비롯해 아파트 곳곳에서 모인 강아지 다섯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열두 명의 주민이 모였다.
아이들은 동물들의 이름표를 만들어줬고, 어르신들은 오래된 반려의 지혜를 나눴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 사람도 훈련이 필요한 존재인지 몰랐네요. 함께 살아가는 훈련.”
그날 이후, 아파트에는 변화가 생겼다.
엘리베이터 안에 “우리 집 반려가 인사드려요”라는 소개 메모가 붙었고,
지하주차장 입구엔 “동물도 가족입니다. 잠시만 배려해 주세요”라는 표지가 세워졌다.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 짖을 때, 그 소리를 문제로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소리가 외로움의 짖음이라는 걸, 누군가는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주 한 병의 온기 (1) | 2025.05.20 |
---|---|
리암과 기와집 골목 (0) | 2025.05.20 |
영서씨의 빈자리 (0) | 2025.05.20 |
하늘이를 기다리는 시간 (0) | 2025.05.20 |
마루와 조용한 친구 (2) | 2025.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