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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두 번째 첫사랑

Chapter 12. 2학년 2반

by 엄라이터 2025. 4. 18.

12. 2학년 2반

 

1995년 서울 부암초등학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똑 자른 단발, 붉은 립스틱을 바른 앙 다문 입술을 하고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

그런 그녀를 똘망 똘망 응시하고 있는 45명의 까만 눈동자들.

2학년 2반 교실의 풍경이다.

그곳에는 윤이와 진우도 있었다.

 

“야. 넌 왜 맨날 도시락도 안 싸 오냐? 거지새끼냐?”

눈이 옆으로 쪽 쬐진 통통한 남자 아이가 진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진우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몸도 왜소했지만, 그 남자아이의 눈을 바라보기가 무서웠다.

 

“야. 최동석. 네가 무슨 상관이야. 진우는 나랑 같이 먹으니까 안 싸와도 돼!”

여자아이는 진우의 앞을 막아선 채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윤이었다.

 

이때부터였다. 윤이와 진우가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한 때.

 

윤이는 진우와 도시락을 같이 먹는 시간이 좋았다.

진우도 윤이와 함께 하는 점심시간이 좋았다.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 오면 윤이는 엄마에게 꼭 김밥 두 줄과 사이다 두 병을 부탁했다.

엄마는 윤이를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김밥 두 줄과 사이다 두 병을 윤이 손에 쥐여 주었다.

 

햇빛이 반짝이는 맑은 하늘의 어느 10월.

어린이 대공원에서 알록달록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사생대회 날이다.

 

윤이는 오늘도 물감을 진우와 나누었다.

둘은 오랜만에 마냥 즐거웠다.

 

그때, 최동석이 다가왔다.

“거지새끼. 물감도 없냐?”

동석이는 윤이의 물감과 물통을 발로 찼다.

 

물통의 물이 진우의 도화지에 쏟아져 예쁜 그림이 점점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진우는 도화지를 재빨리 들어 물기를 털어냈지만 진우가 그린 예쁜 윤이의 얼굴은 점점 구정물이 되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윤이한테 줄 선물이야!!!!!!”

진우는 목 놓아 울며 소리쳤다.

 

처음 들어보는 진우의 괴성에 동석이는 순간 움찔했다.

“거지새끼! 이딴 게 선물이냐?”

 

둘의 목소리가 커지자 선생님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왜 소란스러워?”

 

아이들은 모두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그때 윤이가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했다.

 

“동석이는 제자리로 가고, 진우 너는 이게 뭐니? 여기 다 치워라!”

선생님은 그렇게 쌩하고 가버렸다.

 

6개월 전,

진우는 부모님, 그리고 두 살 터울 남동생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중견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빠, 꼼꼼한 살림꾼 엄마, 재잘재잘 말 많은 남동생 우진

남부러울 것 없이 풍족한 삶이, 다정한 가족들이 옆에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이 진우네 차를 덮쳐 아빠와 동생을 앗아간 순간.

행복도 같이 앗아갔다.

 

엄마는 점점 말라갔다. 말도 없었다.

마치 미라를 보는 것 같았다.

안방에서 가끔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진우는 귀를 막고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윤이가 자주 부르던 노래...

 

학교에 자주 오시던 엄마가 발길을 끊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무관심. 반 아이들의 왕따.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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