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두 번째 첫사랑

Chapter 5. 잊고 있었던 그 이름

엄라이터 2025. 4. 17. 16:25

5. 잊고 있었던 그 이름
 
윤이는 며칠 동안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진우라는 남자는 이상하게도 편안했고, 낯설지 않았다.
가끔은 그가 하는 말 한마디, 웃는 표정 하나가
기억 저편에서 끌어올려지는 감정처럼 다가왔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윤이는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꺼내 천천히 넘겼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도 진우랑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진우는 항상 조용하고 작지만, 나는 그 아이가 좋다.’
 
진우.
그 이름을 본 순간, 윤이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떨렸다.
 
그 아이… 진우…?
 
그날 오후, 진우는 평소보다 더 단정한 차림으로 찾아왔다.
윤이는 그를 보며 침착하게 물었다.
 
“진우씨, 저… 초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초등학교요?”
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강남쪽으로 이사 가기 전엔 부암초등학교에 다녔어요.”
 
윤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숨이 잠깐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갔다.
 
“…혹시, 2학년 2반?”
 
진우는 대답 대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는 숨기지 않았다.
 
“윤이야. 나야. 네 옆자리였던… 그 진우.”
 
윤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작고 왜소했던 아이.
늘 자기를 쫓아다니던 발소리.
도시락을 반씩 나눠 먹던 점심시간.
비 오는 날, 손을 꼭 잡고 함께 달렸던 운동장.
그 아이의 얼굴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잠시의 침묵 뒤, 윤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말해?”
 
진우는 웃었다. 그리고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오래 걸렸지… 근데, 정말 너 맞는지 확신이 안 섰어.
내 기억 속엔 이름 두 글자밖에 없었거든.
윤이. 그게 전부였어.”
 
그날, 부암동의 해는 천천히 저물어갔다.
작은 세무사 사무소 안엔 묘한 온기가 퍼졌고,
두 사람의 오래된 시간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