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얼굴
『내면의 얼굴』
33살 상민은 대학 졸업 후 3년의 공백을 겪었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절, 그는 누군가의 무시 앞에서 늘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문득,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나도 당당하고 싶다.’
그렇게 시작한 7급 공무원 준비는 쉽지 않았다.
매일 도서관 첫 문을 열고 마지막 전등이 꺼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세 번의 실패 끝에 그는 마침내 합격했고, 첫 발령지는 서울시 중구청이었다.
드디어 자신을 증명할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서에 처음 배치됐을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작은 키, 크지 않은 눈, 키에 비해 큰 얼굴. 누군가의 기준엔 비호감일 수 있는 외모.
그들은 그의 실력도, 성격도 알기 전에 웃으며 말했다.
“귀엽다, 귀엽게 생겼네. 우리 부서 마스코트?”
“공무원 되기 힘들다더니, 아무나 되나 보네.”
그 웃음은 따뜻하지 않았다.
조롱의 뒷맛이 있었다.
일은 상민에게 몰렸고, 실수는 더 크게 지적됐다.
회식 자리에서는 술잔을 들자마자 농담처럼 말이 날아왔다.
“상민 씨는 얼굴이 순하니까 딱 심부름꾼이지 뭐.”
상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소를 지었지만, 눈동자는 떨렸다.
그는 매일 밤, 마음의 먼지를 털듯 일기를 썼다.
‘참자. 나답게. 성실하게.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같은 부서의 28살 수아.
대학 4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예뻤다. 길을 가다 누군가 고개를 돌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부서에서 인기 있는 건 당연했다.
상민은 그런 수아를 마음속 깊이 좋아했지만, 감히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아에게는 숨은 기준이 있었다.
수아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늘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아야, 네 아빠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은 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
예쁘장한 내가 너무 아깝다며 수군거렸지.
하지만 엄마는 알아. 진짜 귀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예쁜 엄마에 비해 수아의 아빠는 키도 작고 외모 또한 평범했다.
하지만 아빠는 따뜻한 마음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엄마가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은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늘 고마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와의 삶이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수아는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상민’을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회식 자리에서, 상민은 먼저 고기 굽는 일을 맡고, 다른 직원들 술잔이 비면 조용히 채웠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상민은 웃으며 덮어주었고, 회의 시간엔 한 마디 없이 열심히 받아 적고 실천했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수아가 퇴근하려는 순간, 상민이 자신의 우산을 건넸다.
“저는 집 가까우니까 괜찮아요. 수아 씨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요.”
그날 이후, 수아는 상민의 ‘내면’이라는 우산 아래로 마음이 조금씩 젖어들었다.
어느 금요일 회식 자리였다.
상사가 상민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상민. 너 기안문은 다 작성하고 회식에 온 거야? 아니 도대체 생각이 있어, 없어?”
“아...그 기안은 최주임님이 담당...”
“네가 뭘 안다고!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그 순간, 수아는 테이블 위에 조용히 물컵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과장님, 지금 모두 듣고 있습니다. 그 말, 너무 부적절합니다.
상민 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어요.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상민 씨는 지금까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자리를 다 책임지고 있었어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 일까지 떠안고 야근까지 하는 거... 여러분도 다들 아시잖아요.”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눈을 깜박였고, 누군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상민은 수아를 바라봤다. 눈이 젖어 있었다.
그 뒤로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상민이 무시하던 이들은 오히려 조용해졌고, 회의 자리에서도 그의 의견을 묻는 일이 많아졌다.
그 변화 속에서 상민은 더욱 자신감 있게 일했고, 말도 천천히 또렷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봄날, 수아가 먼저 물었다.
“퇴근하고 우리... 저녁 같이 먹을까요?.
상민 씨...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그 순간, 상민은 마음속에서 들리던 조롱의 소리를 껐다.
그리고 그 자리를 수아의 따뜻한 말이 채웠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수아에게 물었다.
“정말, 상민 씨를 좋아해?”
수아는 웃었다.
“응. 그 사람 마음이, 내가 아는 가장 잘생긴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