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피어난 새벽
《산사에서 피어난 새벽》
연우는 삼십 대 중반의 가장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얻고,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해고된 후 재취업에 수차례 실패했고, 모은 돈은 사업 실패로 바닥났다.
아내와 아이의 눈빛이 점점 힘들어졌고, 연우는 어느새 자신이 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왜 아무것도 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날, 연우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해 산을 찾았다.
아무 말 없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한 산사로 향했다.
깊은 산 속, 초가을 안개가 낀 고즈넉한 절이었다.
그는 그저 앉았다. 오래 앉아 있었다. 나무 아래, 바람이 스치는 그늘에서.
그곳에서 연우는 한 노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말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연우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다 잃었고, 제겐 아무 희망도 없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잠시 침묵했다가 연우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까지 몇 번 숨을 쉬었는지 알고 있는가?”
연우는 멍하니 스님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세어본 적도 없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숨. 세상에 그대가 살아있다는 증거지. 아무리 힘들어도 숨은 계속되고 있네.
그것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뜻이야.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그대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연우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스님은 다시 말했다.
“저기 저 나무를 보게. 해마다 잎을 떨어뜨리고 말라죽은 듯 보이지.
하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순을 틔우네. 겨울이 왔다고 삶을 포기하는 나무는 없어.
그대의 삶도, 지금은 겨울일 뿐이네.”
스님은 작은 접시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금이 간 도자기 조각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금이 간 틈에 금빛 물감이 칠해져 있었다.
“이것은 일본에서 전해 내려오는 ‘킨츠기(금 이어붙이기)’ 도자기라네.
깨진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금으로 덧칠해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바꾸지.
그대의 삶도 그럴 수 있네. 상처는 그대가 살아온 증거이자, 다시 빛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어.”
그날 밤, 연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른 새벽, 해가 떠오르기 전 산사의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녹아내리는 듯한 따뜻한 울림이었다.
며칠 뒤, 연우는 산사에서 내려왔다.
무겁게 짓눌리던 표정 대신, 조용하지만 단단한 눈빛을 되찾았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표정이…”
연우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조금 늦은 봄이 찾아왔어. 이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이후, 연우는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공사판에서도 일했고, 택배 상하차도 했지만 매일 숨을 쉬며 하루를 살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몇 달 뒤, 그는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법도 배웠다.
그가 버티지 않고 삶을 놓았더라면, 이 따뜻한 일상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