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채식주의자』 — ‘고통의 모양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엄라이터 2025. 5. 8. 16:55

『채식주의자』 — ‘고통의 모양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낯설고도 깊은 상처 같은 작품이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몇 날 며칠을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채식’이라는 평범한 단어 하나가 이 소설에서 이렇게까지 뒤틀리고 절절한 상징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정말 말 그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채식의 문제가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자신의 육체와 욕망, 사회적 틀,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부여된 정체성까지 철저하게 거부하고 지워나가는 이야기다. 그 모든 과정이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는 고백으로 시작된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섬뜩한 아이러니다.
영혜는 육체가 더럽다고 느낀다. 어떤 육체인가. 남편에게, 가족에게, 심지어 시동생에게도 함부로 다뤄지는 ‘타인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몸. 그녀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육체를 지워버리려 한다. 그 시작이 고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음식을 거부하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벗어나 식물이 되려 한다. 어떤 독자는 이걸 정신병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혜의 선택은 너무도 조용하고, 치밀하고, 슬프기 때문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생존이 아니라 '무해하게 존재하기'를 원했던 것 아닐까. “나는 나무가 되고 싶어요.” 이 말은 단지 환각에 빠진 여자의 망상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로도 보호받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절박한 반응처럼 느껴졌다.
가장 불편했던 건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1부였다.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무기력하고, 이기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너무 현실 같아서 더 불편했다. 영혜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에게 창피하지 않을까’만 걱정하는 태도. 그는 아내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채식을 하고, 옷을 벗고, 말이 줄고, 결국 입원까지 하는 그 모든 과정을 ‘내게 불편을 주는 일’로만 여긴다. 그렇게 비인간적인 시선을 통해 영혜를 보여주면서, 한강은 우리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당신은 누구의 몸을, 누구의 침묵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있느냐고.
 
2부에선 형부가 등장한다. 예술을 핑계로 욕망을 투사하는 인물이다.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는 장면은 아름답기보단 너무 노골적이고 두렵다. 그는 영혜를 예술작품으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자기 욕망을 소비할 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영혜가 거부했던 ‘육체의 대상화’는 또다시 반복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혜는 그에게서 잠시나마 자유를 느꼈던 것처럼 보인다. 꽃이 그려진 몸, 이름 없는 생물로 존재하는 감각. 어쩌면 그녀가 원했던 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뿌리를 땅에 내린 존재였을지 모른다.
 
3부에서 영혜의 언니 인혜는 우리 독자의 자아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는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지만, 동시에 무력하고 피로하다. 그녀 역시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동생을 향한 연민과 짜증 사이에서 헤맨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혜가 벌거벗고 나무처럼 서 있는 장면은 마치 종교적 환영처럼, 동시에 잔인한 현실처럼 다가왔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까지 허락되는 걸까. 말하지 않는 사람의 고통은 과연 누구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는 아름답지 않다. 불편하고 잔혹하다. 하지만 진실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고통에도 형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고통은 외침으로 표현되지만, 어떤 고통은 그저 몸을 가만히 누이는 방식으로도 표현된다. 고통을 단지 소리로만 해석하려 했던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침묵도 언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강은 영혜를 통해 ‘순수’에 대해 묻는다. 인간이 가장 순수해질 수 있는 상태는 무엇일까. 아무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기 몸을 완전히 비워내는 상태.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건 인간인가, 식물인가.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는 한 여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이 사회의 여성성, 인간성, 고통, 몸, 자유에 대한 질문이다. 너무 과격한가 싶을 정도로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정직한 소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말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절박한 몸짓으로 남는다. 그 문장을 이해해버린 순간, 나 역시 어느 부분에서 영혜와 연결되어버린 것 같아, 오래도록 무겁고 숙연했다.